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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작성일 : 13-10-07 20:30
엉터리 퓨전재즈를 고발한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33  

엉터리 퓨전재즈를 고발한다

어쿠스틱 사운드에 이끌리는 이유

벌써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젠 어느 노래방을 가더라도, 온통 ‘컴퓨터 음악’ 반주뿐이다. 멜로디 악기가 들려주는 자연음은 당최 찾을 길 없다. 그 자리는 피아노 소리 비슷한 전자음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원래 그랬다는 듯 무심하다. 음식으로 치자면 인공 감미료가 듬뿍 발린 밥이나 빵을 먹는 꼴이다. 음식에는 그토록 예민한 사람들이 음악에는 어쩌면 그렇게 둔감한지 이해 못할 일이다.

어쿠스틱 사운드에 이끌리는 이유

나이가 들수록 어쿠스틱(Acoutic) 사운드가 정겹다. 좋아하는 재즈 기타리스트 중에 프랭크 갬베일(Frank Gambale)이 있다. 이른바 스윕 피킹(Sweep Picking)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스윕 피킹이란 기타 줄을 한 음 한 음 제대로 내면서 한꺼번에 훑어내리는 테크닉인데, 이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프랭크는 이런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명인이다. 그렇지만 그가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할 때면 눈이 휘둥그레지기는 해도 별반 감동이 없다. 초절정 테크니션이란 느낌뿐이다.




frank gambale


지난해인가? 유투브 동영상을 검색하다 프랭크가 이끄는 어쿠스틱 밴드를 발견했다. 어쿠스틱 베이스와 피아노 그리고 프랭크, 이렇게 세 사람으로 구성된 밴드였다. 꽉 짜인 멜로디. 물 흐르는 듯한 테크닉. 완벽한 궁합.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멋진 사운드였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볼 사람도 있겠지만, 프랭크가 들려주는 명징하고도 현란한 어쿠스틱 기타소리는 이 뚱뚱한 아저씨를 새삼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귀가 자연에 가까워지는 건지, 복잡한 세상이 싫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좌우지간 나이가 들면서 밴드 편성도 ‘최소한’에 더 이끌린다. 재즈 빅밴드가 주는 낭만도 좋지만 가급적 사람 수 적은 밴드가 더 웅숭깊게 들린다. 소리가 날리는 느낌이어서 알토 색소폰은 그리 좋아하는 악기는 아니지만, 케니 가렛(Kenny Garrett) 트리오를 접하고 나선 그런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

편성은 알토 색소폰과 어쿠스틱 베이스, 그리고 드럼이다. 보통 이럴 때면 피아노가 들어가는 쿼텟이 일반적이지만 이 친구는 <Triology>란 앨범을 통해 피아노 없는 3인조 사운드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숨쉴 틈 없이 작렬하는 색소폰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뒷받침하는 드러머 브라이언 블레이드(Brian Blade)도 일품이다. 피아노 없는 3중주는 웬만한 내공 없이 이끌어가기 힘든 편성이다. 테너 색소폰 주자 조 로바노(Joe Lovano) 트리오가 돋보이는 건 그래서다.

싸구려로 진화한 퓨전재즈

원래 재즈에는 퓨전이란 장르가 있다. 록 음악에서 쓰이는 비트와 전자악기를 재즈에 접목한 결과물인데,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 원조로 일컬어진다. 문제는 ‘혼합을 표방한 이 음악’이 대부분 싸구려라는 사실이다. 초기 재즈 퓨전 선구자로 알려진 마하비슈느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나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정도만 해도 음악적 지향이 확실했다. 퓨전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했고, 톤이 강한 악기를 통해 종종 참신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frank gambale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퓨전을 외피로 쓴 싸구려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재즈라는, 나름 맛깔나는 브랜드를 이용해 음악을 팔아먹으려는 속셈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보다 못한 음악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것이 80년대. 전자음으로 버무려진, 게다가 비트도 천편일률적인 이런 음악을 이젠 재즈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그래서일까? 기타리스트로는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래리 칼튼(Larry Carton)이나 리 릿나워(Lee Litenour) 같은 음악이 참 싫다. 퓨전 언저리에서 꼭 재즈를 농락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 그 유명한 케니 지(Kenny G)도 있다. 이 친구는 그냥 팝 음악인데, 상업적인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서인지 자기 음악을 넌지시 재즈인양 말한다. 의도는 뻔하다. 돈을 벌었으니 이젠 아티스트 대접을 해달라는 거다. 그래서 욕을 엄청 먹는다. 왜? 알 만한 사람은 그게 아니라는 걸 다 아니까!

금영과 태진이 장악한 노래방

가라오케가 대중화되던 초기, 가라오케 룸에는 레이저 디스크가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오케스트라 반주는 제법 품격이 있었다. 스트링 사운드가 풍부하게 깔린 덕분에 노래도 폼나게 부를 수 있었다.





  Kenny Garrett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저비용 고효율’의 경제원리가 작동되기 시작하자 이런 시스템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금은 죄다 ‘금영’ 아니면 ‘태진’이다.

이들이 토해내는 국적 불명의 전자 피아노(정확하게는 피아노를 흉내 낸) 사운드는 언제 들어도 소름끼친다. 마치 사람들에게 스펀지가 뇌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어쩌랴? 동료나 지인들과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그런 타박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오래전 한번쯤 볼멘 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다들 날 쳐다보는 눈길에 ‘이 사람! 화성에서 왔나? 웬 까탈!’이란 말이 쓰여 있는 듯 했다. 그 뒤론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음악은 귀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공 감미료를 증오한다면 당연히 어거지 전자음도 배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일관성(?)을 갖고 있다. 음식에 대해서도 까탈스러우니!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런 문제는(전자음악이 인간감성을 황폐화시키는) 사실 사회학적 관점에서 훌륭한 논문으로도 쓸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 건 내가 감당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참고 만다.

올 한해도 자연에 더 가깝게

어쨌든 노래방에서 종종 느끼는 열패감은 나를 어쿠스틱 사운드로 더 깊숙이 몰아넣는다. 특히 프랭크 갬베일처럼 일렉트릭 명인이 어쿠스틱 사운드를 선보였다면 꼭 찾아 듣곤 한다. 예전엔 미처 알아보지 못한 ‘음악적 자연’이 있을까 싶어서다. 그런가 하면 케니 가렛 트리오처럼 최소 편성에 의한 어쿠스틱 사운드도(물론 흔한 피아노 트리오는 예외로 하고)이젠 제법 목록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2013년 새 해부터 출근길 음악을 새롭게 정리했다. 트럼페터 케니 도햄(Kenny Dorham)의 <It Might As Well Be Spring>을 필두로 한 고전들이다. 트럼펫과 테너 색소폰이, 아름다운 주제를 어쿠스틱 사운드로 변주하는 걸 듣노라면 전날 숙취가 씻은 듯 사라진다. 올 한 해 개인적으로는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갈 듯 싶다. 시인 도연명이 고향마을 담장 넝쿨을 그리워했듯.




[구주모의 재즈 에세이 14]  엉터리 퓨전재즈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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